쿠르디스탄 바자르(시장)에서. 총(AK-47)을 든 사람이 편지 수신자인 핫산

그해 우리가 만난 곳은 이라크 국경이었습니다. 대폿집 하나 없는 국경이었지요. 지평선 끝없는 곳에서 경계란 도리어 허망했더랬습니다. 낙타 몇 마리쯤이야 무심히 서성거렸겠지요. 그건 이곳 남도에서 소를 보는 일과 같으니까요. 그때는 낙타가 감기에 걸리는 일 따위는 아무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낙타보다는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던 때이니까요.

불탄 자동차, 장갑차들이 유령으로 말을 걸어오던 이라크 사막을 함께 내달릴 때도 낙타는 풀 몇 포기 돋은 뜨거운 대지에 머리를 박은 채 말이 없었지요. 이따금 낙타 떼가 움직이는 건 메마른 대지 위를 구르면서 살아가는 백초 때문이라고 했지요. 온통 가시투성이인 백초는 뿌리 없이 땅을 떠돌다 희미한 습기에 잠시 머무를 뿐이었습니다. 그게 자신의 운명 같다고 당신은 말했지요. 가시풀을 씹어야 하는 낙타 입천장에는 늘 핏기가 맺혀 있다고도 했지요. 그때도 우리는 낙타 감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았더랬습니다. 정적마저 총소리의 일부였으니까요.

총소리, 포격소리 사이에도 꽃은 피어 있었지요. 개양귀비 붉은 선홍빛 꽃은 산 자의 피가 얼마나 붉은지 노래하듯 지천으로 널려 있었습니다. 총소리마다 꽃이 피어나는 듯 사막은 붉었습니다. 어느 길목에선가 당신은 총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중얼거렸지요. 피가 다 꽃 붉듯 우리네는 고향이 같지요. 그곳에는 어머니가 계시니까요. 당신에게 귀향은 낙타 타는 일과 같다고 했습니다.

함께 낙타를 타야 했던 곳은 쿠르디스탄에서였지요. 티그리스까지는 멀었습니다. 차는 없고 초원을 가로질러 강물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낯선 극동에서 온 사내를 위해 당신은 낡은 AK-47 소총을 맡기고 낙타를 빌려왔더랬습니다. 해가 기울고 있었고 돌아갈 것을 염려하자 당신은 말했지요. 알라는 아흔아홉 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들 하는데 마지막 이름은 낙타만이 안다고. 그렇지 않다면 어찌 길 없는 사막을 그 긴 세월을 건너올 수 있었겠는지요. 인간 문명사의 첫 물에 손을 씻고 얼굴을 비춰보고 돌아가는 하늘에서는 별들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사막에서 별을 보지 못한 자는 아직 별에 사는 참맛을 알 수 없다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낙타 등에 실려가노라니 별들이 물결치기도 했더랬습니다. 그 낙타가 서울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들었겠지만 이곳에는 메르스가 내습했습니다. 당신의 고향 근처에서 온 것입니다.

전쟁은 낙타 머리에 뿔을 다는 일이라고 했던가요. 귀향하면 시를 쓰겠다던 초원 같은 약속은 지키게 되었는지요. 혹은 IS대원이라도 되었는지요. 전쟁은 함부로 사람과 세월을 망가뜨리니까요. 어쨌든 아직 낙타를 기르고 있다면 감기 관리를 잘 하길 부탁합니다. 이곳에서도 낙타에게 뿔을 다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되새김동물은 윗니가 없고 뿔이 있지만 낙타에게는 없는데도 말이지요. 이즈음 낙타를 조심하라는 말이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모든 잘못은 단봉낙타에게 있으니까요. 정치 무능은 늘 대중 고통입니다. 전쟁은 더 말할 게 없겠지요. 서울에서는 불안도 죄가 되고 있습니다. 다 낙타 때문입니다.

죽기 전에 만나게 된다면, 다시 낙타를 타고 이번에는 티그리스로 가면서 함께 별을 헤이고 싶습니다. 낙타 울음소리에 깨어나던 쿠르드족 마을에서 맞던 새벽이 그립습니다.
낙타의 뿔이 없어지는 날 다시 쓰겠습니다.

▲ 서해성 소설가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주권이 슬픈 나라에서
당신에게 길과 생명을 의지해야 했던 벗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