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최대의 단골 캐릭터는 형사, 또는 경찰이다. 멀리는 1990년대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 시리즈에서부터 최근에는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까지, 경찰은 한국영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직업군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시대에 따라 영화가 그려온 경찰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강우석의 <투캅스>(1993)와 이명세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역시 강우석의 <공공의 적>(2002) 등의 영화에 등장하는 경찰은, 거칠고 투박하긴 해도 그래도 정의의 편에 서 있다. 특히 <공공의 적>에서 막무개로 형사로 등장하는 설경구의 이 대사는 나쁜 놈들에게 가차 없는 응징을 가하는 주인공의 성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 “형이 돈이 없다고 해서 패고 말 안 듣는다고 해서 패고 어떤 새끼는 얼굴이 기분이 나뻐, 그래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맞은 애들이 4열종대 앉아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다.” 한마디로 그의 언행은 깡패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공권력을 위해 일할 뿐이며, 범죄자들을 인간 이하로 다룬다는 점만이 그의 직업을 식별하게 만드는 코드들로 작용한다. 이런 점은 공권력을 오히려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로 끌어 내린다는 점에서 오히려 흥행 코드로 작용했다.

그러나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2003) 이후 한국영화가 경찰을 다루는 태도에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살인의 추억>의 주인공, 그러니까 시골형사 송강호와 서울형사 김상경 역시 경찰이다. 그들은 시골 지역에서 젊은 여성들만을 상대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 중이다.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되는 이들을 몇 명 잡아 심문하긴 했지만 결정적인 물증이 나오지 않고 사건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수사에 실마리가 잘 풀리지 않아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그들 형사들은 자주 시위 진압 현장에 동원된다. 영화의 배경이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권의 보위를 위해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없는 무기력함. 그것이 <살인의 추억>이 포착한 당시 경찰의 초상화이다. 가장 유력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용의자 박해일을 끝내 놓아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송강호는 무심하게 내뱉는다. “밥은 먹고 다니냐?” 번짓수가 틀린 공권력의 한계 안에서 극도의 무기력을 껴안아야 하는 형사의 일성은, 고작 용의자를 풀어 주며 “밥을 먹고 다니냐”이다. “미안하다”는 말도, “억울하다”는 말도 할 수 없는, 꼴에 형사이지만 형사일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자조.

▲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

정권이 바뀌고 2010년대에 이르면 한국영화 속의 경찰은 이제 무기력한 공권력의 현주소를 증명하는 데에 머물고 있지만은 않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오히려 범죄자보다 더 악랄한 캐릭터로 변모한다.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영화 속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최철기는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검사 주양(류승범)과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에 실적과 승진을 위해 소위 ‘배우(조작된 범인)’을 내세우는 데 게으르지 않다. 이 영화의 중심 플롯은 사실상 검사 주양과 경찰 최철기의 대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두 사람 모두 악당에 가깝다는 건 기존의 한국영화에서 흔히 보지 못한 구도였다. 주양과 최철기는, 철저하게 이해 관계에 의해 움직이면서도, 겉으로만 정의구현을 외치는 권력에 대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그들은 생존을 위해 원칙을 저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는, 어떤 면에서는 (관객들 자신을 닮은) 소시민적 캐릭터이다. 그렇다면 <부당거래>는 한편으로 통렬함을, 또 한편으로 현실적 동질감을 이끄는 기묘한 이중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비웃고, 연민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그것이 <부당거래>가 논평한 당대의 공권력이라고 전제하자.

두 번째 상징적인 영화는 최근 <터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의 전작 <끝까지 간다>(2013)이다. 이 작품에서의 주인공 고건수(이선균)은 처음부터 아예 비리 형사로 등장한다. 범죄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돈을 챙겨온 고건수를 향해 경찰 내부의 내사가 진행되고, 그는 그 와중에 사람까지 차로 치고 만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주인공은 어머니의 장례식장으로 피신하고, 차로 찬 시신을 어머니의 관에 숨기는 패륜까지 저지른다. 이 영화 역시 앞서 소개한 <부당거래>처럼 악당보다 더 악당 같은 형사가 자신의 악덕을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더 악당 같은 악당과 정면대결한다는 설정을 펼쳐 보인다. 어느새 한국영화 속 경찰이 악당으로 묘사되는 게 상투적이 되어 버린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 스틸컷

비록 류승완이 ‘경찰 vs. 재벌’이라는, 현실에서는 일어날 공산이 크지 않은 대립 구도로 대리만족을 안겨준 <베테랑>(2015)으로 천만 관객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한국영화 속의 경찰은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28일 개봉하는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에서도 한도경(정우성)이라는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는 말이 경찰이지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의 개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검찰이 시장을 비리 혐의로 기소하자, 그는 시장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게 뻔한 인물을 납치 살해하는 데 간여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아낸 다른 경찰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만다. 살해되기 직전의 동료 형사는 한도경에게 말한다. “야, 너만 해쳐 먹냐? 같이 좀 먹자.” 이 말처럼 현실 속의 경찰들에게 모욕적인 대사도 드물 것이다. 영화 <아수라>가 논평하는 지금의 한국사회는 제목 그대로, 공권력이 표류하는 세상, 교만과 시기심이 많은 이들이 모여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곳이다. 정치권력(시장), 눈치 보는 검찰, 정치권력의 개가 된 경찰이 올라서 있는 삼각형의 링이다.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끝내 숨졌다. 정작 그를 죽게 만든 경찰은, 적반하장으로, 게다가 패륜적으로 고인의 시신을 압수하려 하고 있다. 한국영화가 그려온 공권력의 모습은 유감스럽게도 현실에서의 모습을 크게 왜곡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영화를 ‘현실의 볼록 거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