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피식 웃음이 났다. 저 ‘없어 보이는’ 컴컴한 조명에 좀 찌그러져야 제 맛일 것 같은 노란 주전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벽에 걸려 있는 커도 너무 커다란 태극기야말로 이 방의 주인공인 모양새다. 떡 버티고 있다.

비장미가 뚝뚝 묻어나는데 보고 있으면 킥킥거리게 되는 무대에 세 남자가 앉아 있다. 이상호, 김남훈, 민동기, 세 남자는 웅크린 등과 머리만 보인다. 비밀결사처럼 붙어 앉아 있다. 말할 때마다 입에서 하얀 김만 나와 준다면 그야말로 딱일 듯한 ‘추워 보이는’ 설정. 이 프로그램 제목은 <상해임시정부>란다. 기가 막혀서!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임시’다. 속뜻은 ‘(지금)오죽하면...’ 정도일 성 싶다. 웬 독립투사 코스프레? ‘상하이 뒷골목 지하 골방’이라는 자막은 또 뭐래? 그런데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웃다가도 저 어두컴컴한 ‘골방’을 쳐다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자세가 꼿꼿해지면서 ‘여기는 지금 몇 년도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대안방송을 표방하며 만들어진 수많은 팟캐스트 방송 중에서도 이런 튀는 제목은 없었던 것 같다. 대박 아니면 쪽박 차기 딱 좋은 제목이다. ‘상하이 뒷골목 지하 골방’스러운 뉴스나 분석이 아니라면 오갈 데 없을 배수진이 아닌가. 제목보다 가벼운 뉴스들이면 허풍이 될 것이요, 제목에 부합한다면 슬픈 세상이 될 것이다. 어쩌랴. 이 얄궂은 운명을.

어쨌거나 오프닝은 늘 거창하다. 12월 4일 11회에도 “알 권리를 빼앗긴 전 세계 동포들을 위한 공식 지하 뉴스, 여기는 상해임시정부입니다.”로 시작했다. ‘공식’ 지하 뉴스는 일단, 세상에 이미 나와 있는 보도와 뉴스들을 바탕으로 작성된다. 반드시 “제가 한 말 아닙니다.”가 마침표처럼 따라 붙는다(이제 안 붙으면 시청자가 불안하다. 들어야 안심 된다).

대한민국의 주류 신문들이 한 주 동안 쏟아낸 주요 기사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다만 거기에 순위와 ‘옥석’등의 분류만 매겨 분석을 할 뿐이다. 87번째 소송을 진행 중인 이상호 기자를 포함해 다들 ‘겸손하게’ 말하고 의견을 차근차근 달아놓는다. 비속어 하나 없이 다만 기자 실명제와 매체 이름을 꼬박꼬박 귀에 쏙쏙 들어오게 박아 준다. 듣는 이들의 뇌리에 꼭꼭 남도록. 예전 어떤 시절엔 월급 받는 기자들이 업무시간에 업무로 했던 것 같은 아련한 기억이 있는 당연지사들을, 고발뉴스 후원금 받아가며 ‘용기’가 어떻고 ‘두려움’이 어떻고 약한 소리 늘어 놓아가며 하고 있다. ‘임시’로? 그렇다. 설마 ‘임시’겠지?

11회에 이르러 <상해임시정부>는 정말 큰 걸 터뜨렸다. 처음엔 여느 날과 대략 비슷한 정도를 예상했는데, 다 듣고 나니 좀 멍하다. 이런! 우리는 분명 2012년에 기호 1번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는 과정을 TV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똑똑히 보았다.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물론, 밤새도록 초박빙의 개표가 이어져 손에 땀을 쥐며 꼬박 날밤 새울 줄 알았던 희대의 관전거리가 저녁 8시 ‘확정’ 자막과 함께 한 방에 훅 날아가긴 했다. 12시간 이상 TV 앞을 지켜볼 각오였는데, 그해 최고의 볼거리를 놓친 허탈감과 달랠 길 없는 허전함, 허망함은 2년이 다 되도록 초토화 상태긴 하다. (과정이든 결과든)마라톤을 기대했는데, 우리가 본 건 초 단축 제자리 멀리 뛰기였달까?

그래도, 어쨌든, 우리는 당당히 경선을 통과한, 등록된 대통령 후보였던 어떤 분의 당선을 본 것이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실제로 청와대를 2년여째 뒤흔든 이들의 성함이라며 정00, 최00, 박지0, 세 분의 이름이 주류 언론에 연일 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적어도 대통령 후보는 아니었고, 선출직도 임명직도 아니라는 게 문제라고 한다. 그럼 우리가 TV에서 본 건 뭐였던 거지?

공주는 외롭다. 수많은 동화나 설화, 영화에서 익히 본 내용들이다. 연극 용어 중에는 ‘콩피당트(confident)’라는 단어가 있다. 중요 조연으로 등장하는 이를 가리킨다. 뜻풀이는 ‘신뢰할 만한 친밀한 동료. 촉매적 인물(catalyst character). 결정적인 정보나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구중궁궐에 사는 왕족에게는 거의 이런 오랜 콩피당트가 있다. <페드라>나 <햄릿> 등의 작품을 보면 주인공은 속 얘기를 오직 이 사람하고만 나눈다. 연극에서는 속마음만 들어 주고 ‘사랑의 메신저’ 정도의 역할만 하고 뒤로 물러난다. 연극의 세계에서는, 주인공은 끝내 주인공이고 조연은 끝내 조연의 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뒤섞이거나 뒤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외로워도 말이다. 연극이라면 말이다.

▲ 김원 문화평론가

<상해임시정부>를 들으며 가끔 생각한다. 까짓것, 빼앗긴 나라 구하는 것도 아니고 잘 있는 나라 더 좋아지라고 하는 일인데, 얼마든지 들어주겠다고. 대한민국이 건재하기에 이런 방송도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부터 <고발뉴스>에 필진으로 끼게 되었다. 독자들께 첫 인사를 겸해 말씀드린다. 이렇게 추울 땐 그저 편파적으로 편들어 주는 게 최고라고. 그렇게 쓰려고 한다. 편파적으로 편애하겠다. 사랑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