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헌법재판소는 국회에서 의결된 탄핵 소추안의 심판 결정을 선고했다.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 소추안을 인용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인 대통령이 국민의 손에 파면된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최순실의 국정개입과 대통령의 권한 남용만 탄핵 사유로 인정했을 뿐 공무원 임명권의 직권 남용은 물론 언론 자유와 세월호 참사까지 탄핵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어떻게 봐야 할지 궁금해 한상희 건국대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난 15일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다음은 한상희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한상희 건국대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 ⓒ 이영광 기자

- 지난 10일 박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가 있었잖아요, 8:0으로 탄핵이 인용되었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이번 탄핵 심판 결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해야 할 것 같아요. 대통령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정치, 사회적인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고 또 한편에서는 헌재의 심판을 거친 결정인 만큼 헌법의 측면, 즉 향후 구속력을 가지는 법리에 충실한지를 판단할 수 있겠죠.

우선, 후자의 측면에서는 탄핵 결정은 상당히 미흡하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즉 대통령의 직무상 의무나 책임의 범위를 단순히 사실인정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바람에 향후 어떤 대통령이든 같은 일을 했을 때 그것을 적절히 규율할 수 있는 헌법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한 점에서는 상당히 아쉬운 판결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적으로는 상당히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헌재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을 만한 주제나 탄핵 사유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면이 있으면 과감히 제거 하고 모두가 다 확인할 수 있고 동의할 수 있는 부분만 바탕으로 탄핵 결정을 내렸죠. 압도적인 전원일치 판결을 내림으로써 탄핵 반대 세력이 헌재 결정을 트집 잡지 못해 불필요한 반발이나 대립이 발생할 여지를 사전에 없애버렸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탄핵심판 지연, 탄기국·박사모 세력 결집 시간 벌어준 셈”

- 탄핵 사유 중 최순실의 국정 개입과 대통령의 권한 남용만 받아들인 것이잖아요. 90일까지 걸릴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에요.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처음에 13가지였던 탄핵 사유를 5개로 줄였고 이후 4개의 그룹으로 유형화를 한 것이죠. 그런데 헌재의 이 절차가 징계적 성격을 가지는 탄핵심판이라는 점과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사회, 경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우리나라가 처한 동북아 정세나 경제상태 등을 진지하게 생각하였다면 보다 빠른 시일 내에 탄핵 결정을 내려 국가적 지도력을 확립하고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치프로세스를 제시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헌재는 공정성이라는 명분에 빠져들어 피청구인 측 대리인들이 신청한 증인이나 신문기회 등을 너무 많이 받아들여 준 것 같아요. 문제는 탄핵절차가 그런 식으로 지연됨으로써 정의의 구현이 그만큼 지연되었고 국민도 혼란에 빠져 불안정한 정치 상황에 시달려야 했고, 주말마다 광장에 나와서 촛불을 들어야 하는 수고를 하게 만든 것 등은 헌재가 잘못 판단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죠.

더구나 이렇게 절차가 지연되는 과정에서 탄기국이나 박사모 같은 탄핵 반대 세력이 결집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벌어 줬어요. 실제 김평우 변호사 등이 나타날 때 즈음이면 사실관계 조사가 끝나고 변론을 종결을 지어야 할 시점이었다고 봐요. 그런데 피소추인 측의 지연작전을 재판부가 과감히 차단하지 못하고 수용하다 보니, 대리인단은 전략을 바꿔서 일종의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잖아요. 좀 더 서둘러 그 정도 시점에서 정리했더라면 지금처럼 탄핵을 반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위법하고 폭력적으로 사회에 위해를 주는 식의 집회를 하는 사태는 사전에 조직되지 못하였거나 그것이 퇴행적인 정치세력으로 구성되지는 않았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하루 앞둔 20일 오후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 강남구 박 전 대통령 자택에서 탄핵 무효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변론이 17차례 있었어요. 변론 과정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증인 무더기 신청 등이 있었는데 변론 과정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헌재를 사실상 마비 상태로 빠지게 되는 시점까지 심판절차를 지연시키려고 노력했었잖아요. 너무 노골적인 행동들이 재판관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었을 것입니다. 탄핵결정문도 그런 느낌을 넌지시 전하는 듯해요.

사실 재판장이 대통령 측의 과도한 지연작전에 제재를 하였어야 했다고 봅니다. 탄핵심판은 징계 절차이기 때문에 모든 사실관계를 형사재판처럼 의심의 여지 없이 면밀히 규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피청구인 측에도 그렇게 완벽할 정도의 방어권을 부여할 이유도 없고요.

그럼에도 이번 탄핵심판은 별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겨 향후 비슷한 탄핵 심판을 할 때 헌재가 신속한 심판으로 나아가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어요. 그래서 신속하게 헌정질서를 복원해야 한다는 헌법 명령을 앞으로 지키기 어렵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변론 과정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막말이 논란이 되기도 했어요.

“대통령 측 변호사들이 심판정에서도 난동을 부렸고 탄기국 집회에서도 선동 조의 막말을 한 것은 그 자체로 우리 헌정질서를 부정하고 헌재의 권위를 부정한 행태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변호사로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한 것이지요.

거기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 변호사들은 박근혜라는 대통령을 대리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리인단 자격을 가진 채 밖으로 나와서 군중을 향해 피바다 운운하면서 법질서를 부정하기를 선동한 것입니다. 일단 대리인의 행위는 본인의 행위로 의제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피바다 운운한 것은 대통령의 의사일 수도 있다는 판단이 가능해집니다. 또한 바로 그럼에서 적어도 법적으로는 대통령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느 한순간 반성을 하였다거나 혹은 어느 한 부분도 시정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런 것이 결정문 제일 마지막에 반영된 거죠.

“세월호·언론자유·임명권 남용 문제, 朴에게 면책특권 준 것 아냐”

- 결정문을 보면 공무원 임명권의 직권 남용, 언론 자유, 그리고 세월호 참사 등은 탄핵 사유로 인정 안 되었어요.

“사실 헌재에서는 이들 세 가지를 모두 탄핵사유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박근혜가 잘했다고 하거나 그에게 면책특권을 준 것도 아닙니다. 결정문을 보면 ‘대통령이 잘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임명권 남용이라든지 세계일보 사장의 문제 같은 경우 대통령은 헌재나 검찰, 특검에게 어떤 조사도 안 받았고, 그 바람에 사실관계가 명확치 않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부분은 사후적인 판단에 넘긴다’는 의미가 깔려 있습니다.

세월호 부분도 마찬가지죠. ‘물론 대통령이 잘못은 했지만, 과연 그것을 가지고 우리 헌법에서 말하는 생명권 보호 의무라든지 또는 대통령의 성실한 직무 수행의무라든지 이런 것을 위반하였다고 하기에는 우리 헌법의 해석상 법리가 조금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이 부분은 판단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에요. 근데 사실 이 부분은 헌법 이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상당한 비판 받을 만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이 세 가지에 대한 판단은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다만, 헌재가 만장일치의 결정을 이끌어 내고 향후 불필요한 분쟁이나 불복의 소지를 없앤다는 맥락에서 이를 재껴둔 채 결정문 작성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만장일치의 합의를 위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실관계나 헌법 해석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유보해 버린 것 같아요.”

- 아무래도 세월호는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어서 탄핵사유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세월호 부분은 탄핵사유로서 너무도 명확합니다. 왜냐면 대통령이 그 당일에 뭘 했냐의 문제가 아니고 왜 아무것도 안 했냐가 진정한 탄핵사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주 간단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당시의 7시간 또는 24시간 동안 대통령이 한 것은 뭐냐를 따지면 되는 데 실제 박근혜는 아무것도 한 것 없어요. 뭔가 일을 하기는 했는데 무능하거나 정신이 없다 보니 실수를 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 이건 형법상의 직무유기죄를 따지기 전에 대한민국 정부의 수반이라는 지위에 있는 대통령이 자신에 주어진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나아가 대통령직을 성실하게 수행할 의무를 위반한 것입니다. 당연히 탄핵사유가 되는 것이지요. 이게 헌법의 법리입니다.

그런데 헌재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단호하게 판단할 용기를 갖지 못했던 것 같아요. 왜냐면 세월호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세력이 많잖아요. 이 세월호 부분을 이유로 해서 탄핵 결정을 하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두고두고 트집 잡아 불복하고 나설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 같아요. 때문에 적어도 헌법학자 입장에서 이 결정은 상당히 모자라고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매우 다행스럽게 잘 만들어진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탄핵 심판에서 인용된 것 최순실의 국정개입과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에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세요?

“박근혜는 최순실을 통해서 직무상 기밀을 누설하고 최순실이 국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했죠. 단순히 연설문 조금 고쳐 줬다지만, 대통령의 연설문은 학교 졸업식 때 총장이 하는 연설문 수준이 아니거든요. 대통령이 연설하면 거기 담긴 내용은 반드시 정책으로 집행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예산이 배정되어야 해요. 그에 따라 일반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져요. 그런 것을 최순실이 고쳐 줬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국가 정책에 개입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국정개입 행위들이 국민 주권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죠. 국민이 넘겨준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서 사유화하도록 한 것이거든요.

또 하나 K스포츠, 미르 관련해서 돈을 뜯어낸 것도 ‘삥을 뜯었다’는 말이 가장 정확할 것 같아요. 사실 이 부분도 중대한 탄핵사유로 판단되었지만 헌재의 결정에 남긴 문제가 뭐냐면, 기업들은 대통령이 아무리 협박을 한다고 그것에 못 이겨 무작정 돈을 주지는 않습니다. 대통령이 뭔가 요구를 하면 기업들은 그 요구에 응하는 척하면서 그 다음을 쳐다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기업을 뇌물죄로 몰고 가진 않더라도 그들을 강요죄나 공갈죄의 단순한 피해자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 부분에서 헌재 결정은 판단이 소홀한 점이 있어요.”

- 탄핵 결정문에서 국회의 탄핵소추안에는 삼성 등 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 명목의 돈을 납부한 시기를 전후해 출연 기업들에 유리한 조치를 다수 시행했다는 언급이 있었지만 정작 헌재의 탄핵 사유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이 빠졌다는 지적이 있는데.

“물론 삼성그룹의 후계자 승계 문제는 사실관계가 완전히 드러난 건 아니리서 수사가 더 돼야 하고 또 뇌물죄 수수와 관련한 형사재판 과정도 남아 있으니 이 부분을 헌재가 괄호 속에 넣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걸 구체적으로 결정문에 적시하지는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인 데다 미르나 K스포츠에 가장 많은 돈을 낸 기업인만큼 결정문에서 경고의 의미에서라도 나름으로 언급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이번 탄핵 심판이 갖는 의미는 무엇으로 보세요?

“누구나 언급하는 말이지만, 이 탄핵 결정을 통해 이제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 선언되고 확인된 것입니다. 촛불을 든 국민들이 국회와 헌재를 압박해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던 대통령을 몰아냈어요. 최고의 권력이라는 세 개의 기관-입법, 행정, 사법부를 국민이 압박해서 국민이 원하는 대로 행위를 하게 만들어 버린 거죠. 그리고 이렇게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가지는 힘을 확인하게 됨으로써 우리 국민들은 강력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지요.

우리 국민들은 87년 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때와 다르게 우리가 스스로 우리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고 또 다진 것이지요. 이런 점이 탄핵 사건을 전후해서 우리가 만들어낸 가장 큰 성과인 것 같아요. 우리가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과 그를 향한 우리의 강철같은 의지, 그걸 확인한 것이지요. 대통령이 탄핵당한 건 그 점에서 오히려 부차적인,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봐야 하겠지요.”

“朴 ‘퇴거 미소’, 지지자들 함성에 ‘부활 가능성’ 확신한 듯”

- 박 대통령이 청와대 퇴거가 즉각이 아닌 12일 저녁 늦게 이루어졌는데.

“지난 10일 이정미 재판관은 탄핵 결정 요지를 낭독하면서 시계를 몇 번 봤잖아요. 헌재는 이를 두고 ‘별 의미 없다’라고 하였지만, 그건 대통령이 파면당하는 시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일 듯해요. 탄핵결정문에 선고 일시를 적잖아요. 날짜 외에 굳이 시간을 적어 넣는 이유는 ‘파면한다’라는 주문 낭독이 끝나는 순간 대통령은 그 직에서 파면되기 때문이죠. 그러면 그 순간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벗어나야 했어요.

그러나 파면당한 대통령도 사람인 이상 뭔가 준비를 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래서 하루나 이틀 정도 준비 기간을 주는 건 좋은데, 문제는 과거 특검이나 검찰이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려고 했을 때 못 들어온다며 청와대는 군사기밀시설이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중요한 군사기밀을 민간인 신분이 된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하면 안 됩니다. 더구나 관저든 본관이든 관계없이 모든 국가기밀과 중요한 국가정책 자료들이 집중된 곳이 청와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최선의 방법은 탄핵 결정이 일어나는 순간 그 즉시, 혹은 적어도 서너 시간 안에 대통령을 안가로 옮겼어야 했어요. 그런데도 박근혜는 민간인 신분을 가지면서 계속해서 청와대에 머물렀죠. 그 바람에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청와대 보좌진의 도움을 받아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었고, 더 나아가서 청와대에 있는 수많은 기밀사항 또는 국가 자료를 민간인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둔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 증거 인멸의 우려도 있지 않나요?

“맞아요. 대통령이 그동안 수사나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은 것은 전부 증거 인멸의 한 방식이기도 하였거든요. 그렇게 아주 중차대한, 일종의 국사범에 해당하는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가 남아 있는 현장에 피의자를 그대로 두고 마치 치외법권이나 된 양 특검도 검찰도 근접하지 못하도록 철옹성을 쌓아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12일 저녁 청와대를 퇴거해 삼성동 자택으로 갔잖아요. 거기에서 지지자를 만나 환하게 웃었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감개무량했을 것 같아요. 탄핵 전후의 상황에 대한 보도자료들을 보건대, 대통령은 자신이 잘못했다거나 자신의 잘못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는 인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청와대에서 쫓겨나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지지자들의 함성을 듣는 순간 ‘아 나의 정치세력은 아직도 있구나. 그래서 나는 잘하면 정치적인 부활을 도모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안도했을지도 모르죠. 미소는 거기에서 나왔겠죠.

박근혜는 개인적인 사익을 위해서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을 유린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헌재의 결정으로 쫓겨났으면 정치적으로 그의 편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적어도 당분간은 자숙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그런데도 일부 생각 없는 지지자들이 몰려들어서 불복을 선동하고 정치적 투쟁과 분열을 외치면서 헌법을 유린한 사람에게 재기의 가능성 또는 확신감을 갖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정의로운 나라를 가지기에는 아직도 조금 더 고생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안타까움이 느껴져요.”

▲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들어서며 승용차 안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우리나라는 대통령 귈위시 60일 안에 대선을 치러야 하잖아요. 하지만 후보를 검증하기엔 짧은 시간 같아요.

“이것은 헌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그리 많이 고민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원래는 대통령이 궐위되면 ‘즉시’ 후임자를 선거하게 했다가 80년 헌법에서 3개월 이내로 바꾸었고 그것이 현행헌법에서 60일로 단축된 것입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대통령이 유고 될 것이라고 생각도 안 했겠죠. 그러나 우리 헌법 구조상 대통령이 궐위되면 민주적 정당성을 갖지 않은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으로 들어가요. 이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고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 문제적인 것은 60일 자체에 있다기보다,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 있는 부통령제도를 두지 않고 오직 권한만을 대행할 뿐인 국무총리제도를 두어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통치체제가 등장할 수 있도록 만든 헌법 구조 자체에 있죠.”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우리가 밝힌 수많은 촛불에, 우리가 내린 지엄한 명령에 국회와 헌재가 승복해 이제 우리 헌정사에서 중요한 고비는 하나 넘겼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이제 국민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새롭게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헌재가 제대로 판단해 내지 못한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내서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끔 하는 행정의 체제를 만들어내어야 합니다.

또 불통과 먹통의 통치체제를 국민이 실질적인 주인이 되어 주도하는 정치체제를 일구어야 하고, 재벌이나 대기업이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자신들의 비리를 가리고 더 큰 이익을 추구하며 국민들의 고혈을 쥐어짤 수 있도록 한 정경유착의 체제를 혁파해야 해요. 더 나아가 여태까지 우리 삶을 억압해 왔던 부분을 하나하나 떨쳐내고 우리 모두가 광장의 열정을 일상의 희망으로 이어나가는 노력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촛불은 박근혜 정권을 내치기 위한 심판정을 처음에는 국회에 열었다가 이어 헌재로 그것을 이전하였지요. 이제는 그 심판정이 다시 우리 모두에게 다시 넘어온 것 같아요. 박근혜 정권을 내치는 수준을 넘어 그동안 우리에게 강요됐던 일그러진 억압의 체계 그 자체에 대한 우리의 심판을 내리기 위한 심판정이 되어서 말입니다. 우리가 더욱 노력해야 되겠죠.”

▲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행동 주최, 20차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