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 명예훼손 글에 대해 제3자의 신고나 직권으로도 심의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에 대한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진보 성향의 법률가들은 24일 ‘인터넷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법률 전문가 200인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방심위 개정안이 표현의 자유에 심대한 침해를 불러올 것이 명백하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방심위 개정안은 명예훼손 피해가 있는지 여부조차 불확실한 게시물들까지 심의대상이 되게 하고,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와 권력층에 대한 인터넷상 비판 여론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남용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명예훼손은 제3자 신고가 가능한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지만, 하위 법령인 방심위 심의규정은 당사자·대리인만 신고할 수 있는 ‘친고죄’로 규정해 법률적 충돌이 일어나고 있으므로 심의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방심위의 입장이다.

▲ <사진제공=뉴시스>

이에 대해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 송기춘 한국공법학회 회장 등 법률가들은 “범죄와 형벌을 규율하는 형사법과 방심위의 통신심의를 규율하는 행정법은 그 목적과 주체, 효과가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형사절차상 소추조건인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의 개념이 통신심의 제도에 대입될 수 없으며, 이로 인해 법체계상 충돌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또 “명예훼손은 고도의 법률적 판단이 필요한 분야로서 사법기관도 아니고 법률가로도 구성되지 않은 방심위가 명예훼손 정보를 심의하는 것 자체에도 위법적, 위헌적 소지는 다분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당사자도 아닌 제3자가 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소명도 없이 심의 신청을 남발하게 되는 경우 수사권도 없는 방심위가 명예훼손 성부(成否)를 판단하는 것은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이번 개정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자발적이고 막강한 지지·비호 세력을 가진 공인, 즉 대통령 등 정치인과 연예인, 종교지도자, 기업 대표 등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방심위가 지난 23일 긴급 통신심의소위원회를 열고 ‘북한 대남 도발 조작설’ 관련 게시글 13건을 심의하고 삭제와 접속차단 등 시정요구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여론통제’ 논란 또한 불거졌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방심위에 시정요구를 받은 게시글은 ▶ ‘북한 병사들이 목함지뢰를 심고 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며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짜고 친 자작극’ ▶ ‘2015년 8월 21일 9시경 군사 작전권을 미국이 가져갔다’ ▶ ‘국정원해킹의혹 충격을 상쇄시킬 아이템이 필요했다’ ▶ ‘북한군 포격은 청와대와 국방부의 음모다’ 등이다.

이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해당 게시글들이 명백히 허위에 해당되거나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의 정보로서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제8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 등)제3호카목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미디어오늘>에 “과한 표현이라도 표현의 자유는 인정이 돼야 하고 그 다음에 사법 절차에 따라 불법성 여부를 판단해 게시물을 차단하거나 삭제해야 한다”며 “방통심의위는 스스로 독립기구라고 주장하면서 정부가 꺼리는 정보를 신속하게 차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