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 도로공사 현장에서 대전차 지뢰가 폭발해 민간인이 사망했지만 사고 발생 한 달이 넘도록 이번 사고와 관련된 군당국과 철원군청, 시공업체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4시34분께 철원 풍남댐 인근 ‘동서녹색 평화도로 확‧포장’ 공사현장에서 흙을 퍼와 인근 논에 매립작업을 하던 트럭운전사 한통희(41)씨가 대전차 지뢰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4시34분께 철원 풍남댐 인근 ‘동서녹색 평화도로 확‧포장’ 공사현장에서 흙을 퍼와 인근 논에 매립작업을 하던 트럭운전사 한통희(41)씨가 대전차 지뢰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사진제공=고인희 씨>

철원군은 지난해 2월 동서녹색 평화도로(사곡~풍암간) 개선사업을 진행하면서 총 길이 1,100m 폭 13.5m 구간에 대해 육군OO사단에 지뢰탐사 및 지뢰제거 작업을 요청했다.

군은 지뢰제거 작전을 수행하고 철원군에 지뢰제거 작업 완료를 통보, 이에 철원군은 해당지역의 토사를 정리하고 평탄작업을 하도록 시공업체에 의뢰했다.

사고는 군이 지뢰제거작업 완료를 통보한 지역에서 퍼온 흙을 트럭으로 싣고 와 인근 농지에 하적한 후 다시 이동하는 과정에서 트럭의 앞바퀴가 대전차 지뢰를 누르면서 발생했다.

사고 전날과 당일 지뢰 발견해놓고도 공사 강행.. 왜?

문제는 사고발생 전날인 29일은 물론, 사고 당일인 30일 오전에도 대전차 지뢰가 발견돼 군에 신고 됐음에도 왜 후속 조치 없이 공사가 강행됐는가 하는 점이다.

시공업체 대표 A씨는 10일 ‘go발뉴스’와의 통화에서 “군에서 지뢰제거 작업을 완료해서 군청에 인수해줬을 것 아닌가. 또 군으로부터 인수 받은 군청이 저희한테 작업해도 된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먹고 작업에 들어간 것”이라며 “만약 군부대에서 폭발물인지 얘기해줬으면 당연히 군청에 보고하고 작업을 중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 전에도 두 차례 대전차 지뢰를 발견했음에도 공사를 중단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29일과 30일 오전)군부대에 신고하니 지뢰를 수거해 갔다. 그 전에도 작업하면서 훈련용 지뢰가 많이 나오기도 했고, 군부대에서 훈련용인지 폭발물인지 이야기를 전혀 안 해줘서 아무 이상이 없는 줄 알고 군청에 보고하지 않고 작업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사고가 난 지역은 ‘미확인지뢰지대’도 아니고 일반 농경지라 추가적인 탐지가 불필요한 곳”이라며 “그 곳에서 지뢰가 발견되면 군의 절차는 폭발물처리반(EOD)을 보내, 폭발물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한 다음 회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의 대전차 지뢰가 군이 제거 작업을 진행한 ‘미확인지뢰지대’에서 발견돼 농지로 운반된 것인지, 농지에서 발견된 것인지 여부는 현재 경찰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틀에 걸쳐 폭발물이 발견됐다면 설사 절차상 공지 의무가 없다 하더라도 시공업체나 군청에 위험 여부를 통보하는 게 상식 아니냐’는 ‘go발뉴스’의 지적에 군 관계자는 “(지뢰수거 이후)그 지역에 대해 ‘공사를 진행해라 마라’는 시공업체와 철원군에서 담당해야 한다”며 “시공업체가 철원군과 그렇게 협약을 맺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뢰 폭발사고로 철원군 ‘동서녹색 평화도로 확‧포장’ 공사는 현재 전면 중단된 상태다. 철원군청은 군당국에 지뢰제거 작전 구역에 대한 재탐지를 요청했다.

철원군청 관계자는 11일 ‘go발뉴스’에 “군부대에 재탐사 요청을 했고 지금은 겨울이라 못하고 봄에 해토되면 군부대에서 재탐사 하기로 했다”며 ‘군이 재탐지 요청을 받아들인 데 대해 애초 지뢰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했음을 인정한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 겪고도 허술한 관리체계 하나도 안 변해”

철원군청과 시공업체, 군당국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긴 사이 누군가는 연인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다.

숨진 한씨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고인희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정부의 허술한 관리체계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증거 아니냐”며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 국가에서 하는 관리체계가 이렇게 허술할 수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고씨는 “전날과 당일 지뢰가 나왔으면 공사를 중단해야 하는 게 맞다”며 “시공업체, 철원군청, 군당국 모두 책임이 있다. 국가적인 문제다. 이렇게 관리가 허술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철원지역은 땅을 함부로 파면 안 된다. 그런데 허가를 내준다. 관계자들한테 물어보면 자기네들도 이를 몰랐다고 한다. 그럼 그냥 넘어가는 식”이라며 “안전불감증 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론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며 “그래야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이런 사고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해 11월 30일 대전차 지뢰 폭발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트럭운전사 한통희(41)씨가 사망하기 5일 전인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고인희 씨>     ▲ 지난해 11월 30일 대전차 지뢰 폭발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트럭운전사 한통희(41)씨가 연인 고인희씨와 함께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고인희 씨>

“軍, 지뢰제거지 경계표지 및 접근차단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편, 한국지뢰제거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01년~2016년 12월까지 전후방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사고는 총66건(군인 26건, 민간인 40건), 사망 12건(군인2명, 민간인 10명), 다리 절단 등 부상 77명(군인 37명, 민간인 40명)으로 군인보다 민간인 지뢰사고 및 희생자가 더 많다. 이는 민간인의 경우, 지뢰 매설 위치 등 정보를 접하는데 군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측은 “국방 안보와 관련된 정보라고 해서 보안성을 강화하다보니 역으로 위험의 요인이 되고 있다”며 “국민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들은 군이 좀 더 확대해서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군이 지뢰제거지에 대한 지뢰위험 경계표지 및 접근 차단 안전조치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