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MB 정부시절 대대적으로 추진했다가 수십조 원의 손실로 끝났던 해외자원개발사업 의혹도 남아있습니다. 검찰은 2018년 5월 산업부의 수사의뢰에도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를 단 한 차례도 소환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를 포함한 윗선의 지시 한 마디에 해외자원개발사업의 투자 여부가 결정되지 못하게 하고, 부실사업 강행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철저한 진실규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실질적인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MB가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로 전락한 다음 날인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이명박 前 대통령 재수감, 남은 해외자원개발사업 의혹까지 밝혀 다시는 국민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며 MB와 함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를 소환했다. 

이날 이 의원은 페이스북에 BBK 수사 당시 검찰의 책임론을 강조하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이 전 대통령의 잘못은 일부 단죄되었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라며 “정치검찰 개혁과 공수처 출범이 시급한 이유”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난 달 산업부 국정감사(7일)에서 담당 부장검사로부터 수사의지에 대한 확답을 받은 만큼, 앞으로도 검찰의 수사진행 상황을 면밀히 감시해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검찰이 MB 자원외교를 수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성과라고 볼 만 했다. MB 관련 의혹이 ‘BBK 사건’과 다스 실소유주 의혹, 삼성 소송료 대납 사건 등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에 포함된 혐의가 전부가 아니지 않았는가. 

대법원 확정 판결 직후, 자연스레 ‘MB 공범들도 수사하라’거나 ‘4대강 의혹, 자원외교 의혹도 수사해라’는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진 것도 그래서였고. 헌데, 9일 이수진 의원이 재차 검찰을 질책하고 나섰다. ‘윤석열 검찰’의 신속한 강제수사 때문이었다. 맞다. 기대했던 MB  자원외교 비리 관련 수사가 아니었다.   

▲ 이철규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들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감사원 결과 발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MB 자원외교 비리 수사 2년 반 동안 뭉갠 검찰, 월성1호기 수사는 속전속결

“지난 달 국정감사에서 검찰은 MB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 신속히 나서겠다고 국민께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입니다. 검찰에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MB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는 손 놓고 있으면서, 월성1호기 수사에만 매달리는 것은 국민을 기망하는 것입니다. 하루속히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의 검찰로 되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이수진 의원)

지난 5일 대전지방검찰청 형사5부가 이틀에 걸쳐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가스공사 등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에 이은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월성 1호기’ 고발 사건에 따른 정당한 절차란 설명이었지만, ‘오비이락’ 같은 정황이 한 둘이 아니었다.  

하필 윤 총장의 부인 김건희씨 관련 사건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에 배당된 다음날이었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박원주 전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과 함께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출신인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의 자택과 사무실까지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앞서 국민의힘이 ‘월성 1호기’ 사건을 고발한 것이 지난달 22일. 이후 일주일 뒤 지방순회 일정을 재개한 윤 총장은 첫 방문지로 대전지검을 방문했다. 여기에 이두봉 대전지검장 또한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된다는 중평이 잇따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검찰’의 ‘월성 1호기’ 사건 강제수사 돌입에 대해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 쿠데타’라 강하게 비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손에 쥔 ‘윤석열 검찰’이 ‘조국 사태’를 필두로 그간 청와대나 여당의 주요 일정마다 대대적인 강제 수사로 언론 보도를 좌지우지하고 여론을 뒤흔들었던 것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대전 서구 대전고등검찰청을 방문해 검사들과의 간담회를 마친 뒤 청사 로비에서 검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이수진 의원이 “MB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는 천하태평이던 검찰이 월성1호기 수사에는 전광석화로 움직인다”고 강하게 질타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MB 자원외교 비리 수사는 여전히 묵묵부답인 ‘윤석열 검찰’이 ‘월성 1호기’ 고발 사건은 짜고 치듯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상황에서, 수사 담당자로부터 직접 MB 수사에 대한 확답을 받았다고 공언했던 이 의원이라면 당연히 발끈할 법 하지 않은가. 

“MB 자원외교 비리는 천문학적 규모의 국민 혈세가 낭비된 권력 비리 사건입니다. 이에 비해 월성1호기에 대한 감사원의 평가는 경제성에 국한된 것입니다. 게다가 감사원 경제성 평가는 월성1호기 안전유지비용이 빠진 반쪽짜리였습니다. 최소 2조원 규모 안전성 보강 비용을 무시했습니다. 수익성에만 집착한 논란 여지가 많은 부실 평가였습니다. 그래서 감사원조차도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이 정부 정책 결정 과정까지 수사하겠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국민의힘’과 공조한 정치투쟁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정상적 수사를 해야 합니다. ‘국민의힘’ 편을 드는 월성1호기 수사가 아니라, ‘국민’ 편을 드는 MB 자원외교 비리 수사부터 진행해야 합니다.” (이수진 의원)

강력하고 집요한 삼위일체

허나 언론을 등에 업은 윤 총장은 ‘월성 1호기’ 사건 수사마저 ‘정치적’으로 풀어가는 형국이다. 이날 대전지검 정문 앞엔 ‘대한민국 법치를 바로 잡아 주세요’라는 문구가 붙은 대형 화환이 등장했다고 한다. ‘윤석열 지키자 하트 밴드회원 일동’ 명의였다. 

녹색원자력학생연대(학생연대)는 이날 페이스북 계정에 전국 107여개 학교에 ‘현 정부의 월성 원전 기획살인 사건’이란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고 알렸고, ‘조선’, ‘중앙’ 등이 이 소식을 앞 다퉈 기사화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여당으로 ‘월성 1호기’ 폐쇄에 찬성했던 국민의힘 역시 검찰 수사를 근거로 이 사안을 정쟁화하려는 모양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녹색원자력학생연대 페이스북 캡처>

‘윤석열 검찰’과 국민의힘 모두 MB의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그 어떤 사과의 뜻을 내비치지 않았다. ‘BBK 특검팀’에서 활약했던 윤 총장은 침묵했고, MB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국민힘은 사과는커녕 엉뚱한 논평을 내놨을 뿐이다. 

‘닥치고 정권교체’를 외치는 국민의힘과 ‘검찰정치’에 과하게 몰입한 윤 총장, 그리고 이를 지원사격하는 보수언론의 삼위일체가 찾아낸 다음 타깃이 ‘월성 1호기’ 사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삼위일체, 참으로 공고하고 강력하며 집요하다. 절반의 국민들이 지금처럼 뭉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을 만큼.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