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에서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국정원 댓글 사건을 언급하자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연단 앞까지 뛰어올라와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 의원은 24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동춘 교수가 쓴 책 ‘박근혜정부의 국정원 정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국정원 대선개입 댓글 의혹 사건 등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 정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통치를 답습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무제한 토론을 하던 중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가 박 의원에게 의제와 관련 없는 발언이라고 주장하며 항의하고 있다. 이에 심상정 정의당 대표(왼쪽 앞)가 이석현 국회부의장에게 제지를 요청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가 일어나서 항의하자 박 의원은 “테러방지법으로 국정원을 강화하자는데 그거 반대하니까 상관있다”며 “앉으라, 발언 중이다”라고 응수했다.

이석현 국회부의장도 “왜 지난 시대 아픈 역사를 들추냐고들 하는데 그런 아픈 역사가 부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돌무덤 속에 묻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연관 있으니 참고 들으라”고 요구했다.

이에 박 의원은 다시 김동춘 교수의 책을 낭독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정원을 동원하는 과거식의 정치개입이나 사찰이 어려워지자 총리실을 통해 불법사찰을 하는 정도에 그쳤으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군 출신을 국정원장으로 앉힌 다음 정치의 전면에 등장시켰고 여당인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 국면에서 대북심리전의 이름으로 대선 시기 댓글공작을 한 국정원을 비호하고 있다.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수사를 진행하는 검찰 지휘부나 담당검사를 자리에서 밀어내고 공영언론은 물론 사기업인 방송과 신문까지 국가가 간섭과 통제를 하게 되고 일부 인터넷 사이트도 접근을 금지했으며 국사교과서까지 국가 이념을 주입하는 통로로 삼고자 하고 있다...”

그러자 조 원내수석부대표는 자리를 박차고 연단 앞까지 올라가 “그게 무슨 테러방지법과 상관 있냐”, “허위 사실 유포다”, “의제와 상관있는 내용을 하게 해달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이에 이석현 부의장은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한다고 했는데 역사적인 맥락에서 의제와 다 연결이 된다”며 “과거를 돌아봐서 그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안 생기게 하자는 게 오늘밤 토론을 하는 목적 아니냐. 좀 듣고 계시라”고 거듭 주의를 줬다.

조 원내수석부대표가 물러나지 않고 항의를 계속하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연단 앞으로 나와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분을 퇴장시켜달라”고 이 부의장에게 요청했다.

이에 이 부의장은 “회의 주재하는 의장으로서 판단하는데 의제와 연관 있다고 판단한다”며 “더 말 할 생각이 없다. 들어가라”라고 강한 어조로 상황을 수습했다.

다시 발언을 시작한 박 의원은 “내일이 박근혜 정부 취임 3주년인데 이 법은 국정원 정치를 더욱더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무소불위 권한을 휘둘러왔던 국정원에게 또 다른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라며 “당장 눈앞에 존재하지도 않는 위협을 이유로, 있지도 않은 국가비상사태를 들이밀어서 이 법을 통과시키겠다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정부여당이 목을 매는 이유가 뭐가 있느냐. 민주공화국 정부의 태도가 아니다”며 “총칼 들어야 독재냐”고 성토했다.

조 원내수석부대표의 항의 이후 박 의원은 3시간여를 더 발언해 밤 10시 20분 총 9시 30분을 기록하고 연단을 내려왔다.

진선미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방금 박원석 의원님이 토론을 마치고 북어국도시락을 먹고 있다”며 “환하게 웃으면서 더 할 수 있었지만 ‘은수미 의원님의 기록으로 남겨놓겠다며 마무리하신 거라네요, 이후 주자들도 괜히 이상해질까봐 그렇다고요, 참 멋지십니다”라고 전했다.

박 의원은 <오마이>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책상을 내리치며 필리버스터를 질타했다고 하자 “자기가 분노하면 우리가 졸아서 뭐라도 해야 하나”라며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한편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필리버스터 규탄 1인 시위에 나섰다. 

조 원내수석부대표는 세월호 참사를 AI(조류 인플루엔자)에 비유하고 “참사당일 대통령 7시간은 사생활”이라고 주장하고, 유승민 의원에게 “헌법보다 인간관계가 먼저”라고 비난하는 등 사안마다 망언 논란을 빚어온 정치인이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후 치러진 6.4지방선거에서는 ‘도와주세요’ 읍소 1인 피켓 유세를 했었다.

▲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와 심윤조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